00_살림광장_영화제때 공연하는 모습

[국내] 전주, 영화의 거리 #4

사람 냄새 깊게 배인 곳

아무리 바쁜 일정 속에서 빡빡하게 일한다지만, 영화제 스텝도 엄연한 직장인인지라 일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음주와 함께 날려버리는 것은 일상지사다. 더욱이 서울 스텝들은 전주에서 합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집에 갈 고민이 없으니 음주의 기회는 더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은 영화제 사무국으로 치킨과 맥주, 일명 치맥이 협찬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전 사무국 스텝들이 모여들어 순식간에 치킨과 맥주가 동이 나 가는데 하필 그날따라 우리 프로그램팀 팀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운 상황이어서 자리에 있던 나와 한두명의 스텝들은 그야말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 했다. 그러고 있자니 다른 팀에서 우리가 불쌍했는지 치킨 한박스를 통째로 건네주면서 프로그램팀 먹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 치킨 한박스를 받아 책상에 두고 팀원들에게 연락을 돌려 보니 대부분 객사 일대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참이었다. 사무실에서는 이미 한바탕 치맥의 기운이 돌고 난 후여서 우리는 밖에서 먹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치킨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영화제 사무국이 있는 기린오피스텔 바로 뒤에는 중앙교회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앞에는 ‘살림광장’이라 불리는 넓은 광장이 있다. 이후에 영화제 기간에 작은 공연을 진행하기도 한 이 광장을 우리는 평소에도 핫도그나 음료수 등 길거리 음식을 먹을 때 종종 찾아가곤 했는데, 시원한 저녁바람을 쐬며 치맥을 먹기에는 더욱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카톡을 확인한 팀원들이 하나 둘 살림광장으로 모였고 야근을 앞둔 상황에도 기분좋은 치맥을 즐길 수 있었다.

#1 살림광장

01_살림광장

02_살림광장

#2 살림광장 : 영화제 당시 공연하는 모습

04_살림광장_영화제때 공연하는 모습

03_살림광장_영화제때 공연하는 모습

그렇다고 우리가 길거리에서만 맥주를 마신건 아니었다.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전주 특산이라 할 수 있는 가맥이다. 가맥은 술집 이름이 아니라 Bar나 Pub과 같은 술집의 종류를 말하는데, 일종의 슈퍼마켓과 술집이 혼합된 형태로, 슈퍼마켓에서 술과 안주를 고르고 안에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자리까지 마련되어 있는 곳을 말한다. 지방의 다른 곳에도 가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서는 본적이 없는 형태의 술집이다.

전주에 가기 전부터 여러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던 가맥인 ‘전일슈퍼’(* 입으로 전해지는 이름은 전일슈퍼 이지만, 간판에는 전일갑오 라고 되어 있다.)는 전주 가맥계의 대스타로 특별히 유명한 곳이어서 우리도 한번 찾아가긴 했지만, 객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일종의 현지인이 되어버린 우리들이 굳이 여러 번 찾아갈만한 곳은 아니었다. 대신 즐겨 찾은 곳은 사무실에서 숙소에 가는 길에 있었던 ‘고향슈퍼’ 였는데, 내부에는 한쪽은 물건들을 판매하는 진짜 슈퍼마켓이고 한쪽은 술을 마시는 술집의 모습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 이곳이야말로 가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3 고향슈퍼

01_고향가맥

그래도 역시 가난한 영화제 스텝들이 가장 음주를 즐긴 곳은 모두가 함께 기거하고 있는 숙소였다. 영화제 전에도, 영화제 기간에도, 무엇보다도 영화제가 끝나고 서울에 올라오기까지 일주일간은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방을 바꿔가며 술자리를 만들었다. 퇴근길엔 항상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다가마트에 들려 맥주와 안주거리를 구매했다. 다가마트는 없는게 없는 마트인데,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안주는 문어포와 쥐포 등의 구이 안주였다.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구이 안주류가 진열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안주를 구매하면 주인 아저씨는 직접 안주를 적당히 굽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우리가 먹기 딱 좋은 상태로 만들어 주셨다. 역시 가맥의 문화가 있는 전주답다.

#4 다가마트 앞 

01_다가마트

#5 내부 문어포 매대, 문어 굽는곳

02_다가마트

#6 스텝들과의 추억 

05_살림광장_치맥

영화가 좋아서 발을 들어놓았는데, 함께 먹고 마시는 와중에 어느덧 사람 정이 깊게 들어버렸다. 영화제가 끝났고 대부분의 스텝들은 계약 기간도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취방에 모여 술과 인생을 공유하고 멀리 엠티를 떠나고 함께 영화를 보고 강연을 들으러 다닌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었느냐가 공간의 느낌을 정한다. 전주는 그래서 사람냄새 나는 정겨운 곳으로 남았다. 함께 했던 사진 한장 앞에 두고 술 한 잔 기울이면 어느덧 이곳이 서울인가 전주인가 나도 모르게 아련한 기분에 젖는다.

2013. 09. 02

김윤경 /  hen_keai@naver.com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Program Coord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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